BGM ♬ Evelyn Stein - Quiet Resource
시몬 마커스에게.
요즘 꿈에서 매일 너를 만나.
네가 웃으면서 나를 수녀님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더 이상 수녀가 아닌데. 너, 마지막엔 내 이름을 불렀잖아.
그런데 꿈에서는 꼭 수녀님이라고 하더라. 이상하지.
그때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을 텐데.
나, 일 그만뒀어. 너를 죽인 걸 마지막으로.
거기 있으면 네 마지막이 자꾸 떠올라서 괴롭거든.
나는 내가 그런 걸 다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사람을 처음 죽였던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네가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기는 했나 봐.
네가 살아있을 때 말해줄걸.
너는 나한테 정말 특별했다고.
너와 세상을 맞바꾼걸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아.
네가 너무 미워.
너는 내가 널 죽이길 바랐잖아.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왜 그랬던 거야? 왜 그렇게까지 내 손에 죽고 싶어 했던 거야?
나랑 함께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조금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그랬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기가 힘들어서 요즘엔 고개를 숙이고 다녀.
다들 행복해 보여서.
세상은 너라는 제물을 바치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여.
한 명의 목숨으로 나머지를 구했는데, 아무도 몰라.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째서라는 생각이 떠나가질 않아.
한적한 마을로 가서 진짜 수녀라도 될까 싶어.
근데 아마 못 할 거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수녀님이라고 부르는 모습 속에서 너를 찾을 것 같거든.
꿈속의 네가 아직도 아른거려.
역시 수녀는 관둬야겠다.
신에게 끝없이 고해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괜찮아질까?
나는 너를 대가로 세상을 구했는데, 여전히 죄인이야.
언제쯤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쩌면 영원히 이럴 수도 있겠지.
다 내 손으로 선택한 일이지만 너무 힘들다.
힘들어.
견디고 싶지 않아.
넌 모르겠지, 지금 내 방안에 몇 장의 종이가 쌓여있는지.
얼마나 많은 종이에 네 이름을 써 내려갔는지.
너 없이 살아갈 내게 관심이 있긴 했을까.
너랑 내가 뭐라고.
우리가 뭐라고.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전해지지 않을 말들을 적는 것도 그만해야겠어.
안녕,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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