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총이 생각난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 그건 생애 첫 기억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총을 들기 전에 고아원에 있었고, 그 시절 지냈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기억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용병단에서 총을 처음 잡았던 때다. 고아원에 있던 나는 어느 날 용병단에 팔렸다. 말이 좋아 용병단이지 이런저런 불법적인 일들을 신원 말소시키기 편한, 연고도 없는 어린애들에게 시키는 곳이었다. 내가 있던 고아원의 원장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 난 이미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하고 헤어진다는 생각에 잔뜩 화가 나서 열리지도 않을 문을 무수히 두드렸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약했기에 금방 지쳐 나가떨어졌다. 그 뒤로는 그냥 생각하기를 멈췄던 것 같다. 용병단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맞기도 많이 맞았다. 나는 작고 만만한 인상이라 질 나쁜 새끼들만 모인 곳에서는 시비 걸리기 딱 좋았으니까. 그러나 나도 조용히 맞고 있기만 한 성격은 아니라 늘 맞은 만큼 돌려줬고, 그런 날마다 대장한테 죽도록 얻어맞고 창고에 갇혔다. 그 모든 게 서럽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 서러운 게 있다면 내가 맞은 것보다 더 때려주지 못한 것 정도였을까.
용병단에 오고 나서 가장 먼저 받은 건 기초적인 체력 훈련이었다. 나이와 영양상태, 그 무엇도 고려하지 않은 혹독한 훈련은 사실상 육체 고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충 한두 달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 체력 훈련이 끝난 다음 날, 드디어 처음으로 사격 훈련을 시작했다. 내 생에 첫 기억은 여기서 시작된다. 난 아직도 그때 내 손에 닿았던 총의 감각을 기억한다. 분명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스코프로 타깃을 확인하고 방아쇠에 손을 올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총을 잘 다룰 수 있다는 걸. 그 날 이후 모든 사격 훈련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보였고 그게 대장을 아주 만족스럽게 했다. 아마 그때부터 대장이 나를 창고에 가두지 않았던 것 같다. 대장은 앞으로 벌어질 임무들에서 내가 자신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대장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를 건드는 자식은 더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난 날 건드리는 자식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았다. 무엇보다 총 쏘는 게 재밌었다. 그날, 처음으로 용병단 생활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 임무를 나가던 날, 대장은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어린 우리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뭐, 대장 입장에서는 나쁜 사람들이 맞았을 거다. 자기가 원하는 마약을 나눠주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사회적 측면에서는 대장이나 그놈들이나 똑같이 나쁜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대장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막연하게 죽어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난 사람을 죽였다. 첫 임무에 첫 살인이었다. 생각 보다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훈련 때 쓰던 못생긴 솜 인형과 사람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든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그 말이 내게 지워질 죄책감을 앗아갔다. 그렇게 살인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대로 무뎌질 즈음 용병단의 위치가 군부대에 들통났다.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우리는 손쉽게 제압되었다. 그때 내 나이가 아마 14살인가 15살이었을 거다. 아직 어린 나의 처우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군인들은 결국 나를 일반 군부대에 입대시켰다. 재능을 썩히기 아까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처분이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따랐다. 하지만 내가 갑자기 굴러들어온 모난 돌 같이 느껴졌는지 시비 거는 인간들이 옛날처럼 다시 생겨났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이 더 질이 나빴다. 용병단 애들은 숨기지 않고 눈앞에서 적의를 드러내기라도 했는데, 이 인간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습하게 나를 괴롭혀댔다. 자기들도 걸려서 징계 받기는 싫었겠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 같잖다. 나는 그런 새끼들한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물어뜯고, 욕하고, 두들겨 팼다. 내가 작아서 만만할 줄 알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미친년처럼 굴었다. 그들은 내가 적당히 괴롭히면 풀 죽어서 나가리라고 생각했겠지만,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덕분에 내 별명은 '3소대 미친개'였다. 징계를 받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쫓겨나더라도 상관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내가 무시당하지 않는 거니까. 내게 지어진 별명을 군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내게 시비 거는 인간들이 사라졌다. 그 뒤로는 별문제 없이 군 생활을 해나갔다. 훈련은 즐거웠고, 성취감도 있었다. 사격 성적은 언제나 부대 내에서 가장 좋았다. 20살이 되던 해, 나는 특수 부대 저격수로 발령받았다.
특수 부대는 일반 군부대보다 더 좋았다. 내 인생에서 행복의 시작을 점으로 찍을 수 있다면 아마 20살의 그날에 찍을 정도로. 상사들은 내 실력을 인정하며 일을 믿고 맡겼다. 동기들 또한 내 배경을 다 알고 있었기에 불편하게 구는 일이 없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여기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생겼던 건 후배들이 들어오고 나서였다. 그들은 내 배경에도 실력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외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떤 후배는 내가 만만해 보여서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어떤 후배는 내 외모만이 마음에 들어서 치근덕거리기도 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새끼들뿐이었다. 제일 싫었던 건 이 후배라는 놈들은 나를 만만하게 여기든 내 얼굴을 좋아하든 하나같이 내가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나를 만만하게 여기는 놈은 말할 것도 없고, 나한테 치근덕거리는 새끼도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면 내 말은 쥐뿔도 듣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이런 새끼들이 빨리 내 곁을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처럼 성질을 부리지 못했던 건 내가 지금 이 자리를 너무 좋아하니까. 이 일이 무척 마음에 드니까.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해진 교육 기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왔다. 그리고 네가 들어왔다. 시몬 마커스.
네가 처음부터 눈에 띄지는 않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너 또한 이전의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너는 항상 내 예상을 빗나갔다. 어떻게 이런 모자란 인간이 특수부대로 올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허술했다. 그런 너를 보며 한숨도 쉬고 화도 냈지만, 사실은 가장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 여태까지 있었던 놈들은 내 도움이라고는 전혀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너만은 달랐다. 너는 항상 나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너만은 내 외모를 가지고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게 아닐 수 있지만, 내게 갖는 의미는 컸다. 그 뒤로 내 생각은 바뀌었다. 후배라는 것도 조금은 괜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고.
"선배, 임무 안 가요?"
네가 부르는 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나는 총기 손질하던 걸 갈무리하고 네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는 원래 눈이 접힌 채로 태어나기라도 한 건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녀석은 알까? 그런 생각이 짧게 스쳤다. 뭐, 알면 좀 어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대답 대신 너를 지나쳐 앞장서서 걸었다. 교육 기간이 얼마나 남았더라. 조만간 상부에 찾아가서 직속 후배로 배정해 달라고 해야겠다. 얘 말고 다른 후배는 싫다고 하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실없는 생각을 하나둘 정리하고 임무지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연성 및 애프터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 홀로서기 (0) | 2020.07.31 |
---|---|
[애시] Letter of Confession (0) | 2020.07.09 |
[오신만] 無神論者 (0) | 2020.06.19 |
[주아메] 집착 (0) | 2020.06.15 |
[오신만] The Last Gunshot (0) | 202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