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성 및 애프터로그

[오신만] 無神論者




이늩(@TRNti14252277)님의 CoC 7th 팬메이드 시나리오 <宇宙海 : 우주해>의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주아는 똑똑하고 감이 좋다. 똑똑했으니 공군 특수부대 수석을 차지했을 테고, 감이 좋으니 죽음을 목전에 둔 수많은 상황에서도 유유히 살아 나왔으리라. 신체 능력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녀는 그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마야(Maya)로 발령받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강주아'가 인정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강주아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평가이지, 그녀가 앞으로 이곳에서 할 일들을 기대하고 채용한 건 아니다. 정확히는 마야에서 하게 될 자질구레한―우주 정거장 설비 관리 같은― 일들을 완벽히 수행해내라고 그녀를 부른 게 아니었다. 그녀는 '완벽한 실험체'로써 마야에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기대했고, 그래서 실망했다. 낙하 높이가 높을수록 떨어질 때 받을 충격은 크다.

 강제적으로 배양실로 끌려가던 날, 강주아는 생각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뒤틀린 존재일 거라고. 그야 당연하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등을 떠밀어 저 높은 곳에서 구덩이까지 처박는 존재라면, 세상에서 가장 꼬인, 빌어먹을 새끼임이 분명하니까. 그러니 그런 존재는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신은 없으니 이 분노가 향할 곳 또한 없다. 갈 곳 없는 분노는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전부 멸망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미고와 여타 연구원들은 강주아의 그런 행동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기 있는 모두와 다르니까. 아니, 애초에 지금까지 남은 인류 중 그녀 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대단한 우주적 존재라 할지라도, 그녀가 마야와 지구를 멸망시키려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주아에 비하면, 마티아스 스턴버그는 평생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의 인생은 대개 운이 좋았다. 그를 배려하는 선임들과 그를 존경하는 후임들로 가득한 세상. 큰 굴곡 없이 평탄하고 곧게 뻗은 그의 인생 위에는 앞을 막아서는 이도, 뒤에서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이도 없었다. 단 한 명, 강주아를 제외하고. 그녀와 엮인 것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되겠지만, 마티아스 스턴버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살면서 자신을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짧은 감상에 그쳤을 뿐이다. 그는 그래서는 안됐다. 그녀를 더 경계하고 멀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아왔으므로, 안일했다. 안일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수적 열세에 몰리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했다. 한쪽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사이, 또 다른 쪽은 일방적으로 혐오하는 사이. 둘 중 누구도 제 편을 들어줄 리 없었다. 있다고 해도 후자가 좀 더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강주아는 그런 쥐꼬리만 한 확률에 기대어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움직였다. 눈앞의 이 남자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를 여기에 불렀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그녀는 그날,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어실 차창에서 바라본 우주의 풍경은 끔찍이도 아름다웠다. 이것만이 강주아가 이곳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단 한 가지였다. 이제 이 풍경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그런 생각이 짧게 스쳤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이 모든 것이 드디어 끝난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밀려왔다. 그녀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하는 내내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응당 그리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고 있었다. 제 배에 날 서린 메스가 꽂히기 전까지는.

 강주아는 고개를 숙여 하얀 가운 위로 스며드는 붉은 자욱을 바라보았다. 살면서 남의 것이 아닌 피가 옷에 묻는 건 처음인데. 삶의 마지막에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만이 떠올랐다. 그야, 내가 죽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강주아는 인간이다. 그러니 그녀 또한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 간단한 사실을 망각한 그녀는 더는 똑똑하지 않았으므로, 한없이 멍청하고 평범해진다. 평범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 또한 생의 마지막에 신을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신이 언제나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죽기 직전, 무신론자는 신이 있음을 깨닫는다. 




'연성 및 애프터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시] Letter of Confession  (0) 2020.07.09
[애시] 생애 첫 기억  (0) 2020.07.02
[주아메] 집착  (0) 2020.06.15
[오신만] The Last Gunshot  (0) 2020.06.15
[우주] Unknown Lover  (0)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