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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및 애프터로그

[우주] Unknown Lover



BGM ♬ : Halsey - Sorry


용봉(@bongY_TRPG)님의 CoC 7th 팬메이드 시나리오 <Return to me HERO>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벽에서는 언제나 퀴퀴한 묵은내가 났다. 당연하게도, 감옥 생활은 좋지 않았다. 혼자서 허름한 집에 살 때보다 더 나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최주연을 불편하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주변의 조롱, 멸시, 가끔 받는 동정 어린 시선까지도. 오히려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김없이 같은 시각, 교도관이 짧게 말했다. ―면회요.

 오늘로 벌써 5년째. 우영광은 꾸준히 면회를 왔다. 처음 1년은 주에 한 번씩 왔던 것 같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세 번인가. 어쨌든 우영광의 말로는 최주연의 상태가 어느 정도 참작되었다는 모양이다. 최주연은 감옥에 들어온 그 날부터 꾸준히 전문의를 통해 상담을 받았다. 처음에는 과거가 떠올라 힘들어하는 눈치였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럭저럭 적응한 것인지 조금씩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그런 것들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최주연은 그런 사실들이 그다지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감옥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최주연은 그런 것들이 불편했다. 우영광의 얼굴을 볼 때마다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질척하고, 성마르고, 거칠하고, 답답한 모든 것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그를 볼 때면 배의 수술 자국이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벌써 10년은 더 된 자국이다. 아플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최주연은 면회를 거절하지 않았다. 언제나 대화의 시작은 우영광으로부터였다. 최주연은 단 한 번도 먼저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사실은 대화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 오갔다. 주연 씨, 밥은 먹었어요? 어디 아픈 곳은요? 주연 씨. 우영광이 하는 말은 허공에 흩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5년 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저 웃으며 최주연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간혹 최주연이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물음에 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짧게 짧게 뱉었다. 날 구한 걸 후회해요? 언제까지 이러려구요. 영광 씨, 그만둬요.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이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기 위해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아직 과거에 매여있더라도 눈앞의 이 사람만은 나아가야 했다. 이 사람을 그 시간에 붙잡아 두는 건 못 할 짓이다. 그 모든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 최주연은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최주연은 잘 알고 있었다. 우영광이 그럴 리 없다는 걸. 그는 어떻게 해서든 저와 같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함께할 것이며, 저의 손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 거라는 것도.


 "내일이네요. 주연 씨가 나오는 것도."

 "……네."


 우영광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보면 감옥에 있다가 나가는 사람이 그인 줄 알 정도였다. 최주연은 그의 말에도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수술 자국이 또다시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전보다 더 찢어질 듯한 느낌. 최주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통증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아.


 "어디 아파요? 괜찮아요?"


 투명한 유리 너머로 우영광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최주연을 바라보았다. 최주연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영광의 시선은 천천히 움직이다, 이윽고 최주연의 손에서 멈췄다.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괜찮, 으니까. 보지 마요."


 최주연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말은 튀어나온 후였다. 어차피 늘 이런 식의 말밖에 하지 못했으니 크게 상관없을 거라고, 그녀는 애써 생각을 돌렸다. 최주연의 날카로운 말투에 우영광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사과하지 마요. 영광 씨 탓이 아니잖아요. 사과하지 마요, 제발.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알겠어요."


 우영광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최주연을 바라보았다. 올곧은 그의 눈은, 입에 차마 담지 못한 많은 말들이 담겨있었다. 최주연은 그런 것들이 불편했다. 이대로 그의 눈에 익사해버릴 것 같았다. 어쩐지 숨이 막혀오는 기분에, 최주연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오랜 침묵만이 흐르는 시간을 채워나갔다. 우영광은 머뭇거리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면회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최주연은 고개를 들어 문에 달린 작은 창 너머로 조금씩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입술을 짓씹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러고 싶은 게 아닌데. 하지만 그의 앞에만 서면 눈이 멀어버렸다. 그의 상처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제게 남겨진 상처만이 계속해서 쑤시듯 느껴질 뿐. 눈먼 이의 감각은 어느 때보다 예리했다.






 따뜻한 햇볕이 쇠창살을 지나 어둑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최주연은 가만히 자신이 있던 방을 눈에 담았다. 오늘로, 여기도 마지막이니까.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감옥에서 지냈던 시간이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법이다. 짧은 감상이 흐르고, 교도관이 최주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수 번호 20061001, 최주연.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쇠창살 밖으로 걸어 나갔다.

 건물 밖으로 향하는 문고리는 차가웠다. 최주연은 잘게 몸을 떨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걱정과 동시에 떠오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영광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그가 이 문 앞에 있을 것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자 가슴이 철렁했다. 영광 씨가 안 나와 있으면 어떡하지. 사실 어제 기뻐 보였던 건, 드디어 나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왜 나는 당연하게, 영광 씨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렇게 행동해놓고. 그런 말들을 뱉어놓고. 5년 동안 있었던, 그와 면회실에서 나누었던 모든 것이 짧게 스쳤다. 다시 문고리를 놓고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 감옥에 있으면 영광 씨가 계속 와줄지도 몰라.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바보 같아. 교도관은 뒤에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최주연은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따스하고 아릿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최주연은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5년 만이었다. 그녀는 밖에 나와서도 감은 눈으로 하염없이 서 있었다. 이 두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이 따스한 햇살이 사실은 거짓일까봐. 이 앞은 사실 시커먼 구덩이일까봐.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이마 위로 따스한 손이 얹어졌다.


 "주연 씨, 병원부터 갈래요? 어제부터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최주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우영광이었다. 바보 같은 사람. 밖에 나온 저를 보고 하는 말은 걱정, 또 걱정뿐이었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일렁였다. 눈물이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주연을 비웃듯 눈물은 방울져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5년 전 마지막, 우영광에게 안겼던 그때처럼 최주연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우영광은 잠시 당황하는듯했지만, 이윽고 그녀를 팔로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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